공신도감(功臣都監 : 공신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관서)

翊(戴)佐命功臣折衝將軍雄武侍衛司上將軍馬天牧本貫

右員乙佐命功臣錄卷良中奇是臥之乎事叱段當使與別監同議申言 建文三年正月二十三日準議政府關

 

 

(1) 왕지(王旨=敎旨=사령장)

세종대왕친필(世宗大王親筆 : 세종대왕이 손수 쓴 사령장)

◦馬天牧爲推忠翊戴佐命功臣正憲大夫兵曹判書者 永樂十八年七月十五日

(마천목위추충익대좌명공신 정헌대부 병조판서자 세종2년(1420) 7월 15일)

◦馬天牧爲推忠翊戴佐命功臣崇祿大夫行兵集賢殿大提學兼判三軍府事者 宣德三年七月十二日

(마천목위추충익대좌명공신 숭록대부 행 집현전 대제학 겸 판 삼군부사자 세종10년(1428) 7월 12일

◦馬天牧爲推忠翊戴佐命功臣輔國崇祿大夫長興府院君者 宣德四年二月初三日

(마천목위추충익대좌명공신 보국숭록대부 장흥부원군자 세종11년(1429) 2월 초3일)

◦馬天牧爲推忠翊戴佐命功臣輔國崇祿大夫領敦寧府事兼領中樞府事者 宣德四年二月初三日

(마천목위추충익대 좌명공신 보국숭록대부 행돈령부사 겸 중추원사자 세종17년(1429)2월 초3일

◦馬天牧爲推忠翊戴佐命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贈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者 正統元年四月日

(마천목위추충익대 좌명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증 의정부 영의정 겸 영경연자 세종18년(1436) 4월 일)

◦馬天牧 諡忠靖公 險不辭難忠寬樂令終靖

시호 충정(忠靖) “위험을 불사하고 난국에 대처하는 것이 忠이요, 너그럽고 즐거운 마음으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세상을 마친 것을 靖이라 한다.”라고 公의 행적을 칭송하여 세종이 시호를 내리다.

◦命 不祧之典 賜 畵眞

부조지전을 명하시고 초상 한 폭을 내리시다.(不祧之典=나라에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영구히 사당에 제사지내게 하던 특별한 은전)

 

(2) 충정공예장사제문(忠靖公禮葬賜祭文 : 충정공 국장 때 세종대왕이 내린 조사하는 글)

敎曰臣有膚功旣終始之不替國有常典惟贈恤之特加惟卿氣宇宏深性行醇謹才捷於禦侮智周乎運籌可謂王之爪牙而國之楨幹也我太宗之潛邸也擢卿於行伍授卿以軍機而卿果能徇義忘私盡忠竭力佐命於危迫之日撥亂於倉卒之間惟卿之忠與卿之勇宜乎誓山河而銘彛鼎也屢登庸於摠制仍賜封於長興任用匪輕眷遇彌篤逮至眇末倚爲于城乃乞身而養親俄纏疾而謝事陞崇秩於府院庶休致於桑楡何訃音之遽聞痛昊天之不慭遣禮官而致奠告英靈而叙辭於戲休戚義同敢忘卿之舊績幽明一諒軆予之至懷 (세종실록 51권 14면 抄本)

세종대왕이 제문에서 말씀하시기를 “경은 큰 공훈이 있을 뿐 아니라 시종 충성과 절의에 변함이 없었으니 나라의 법도에 따라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령경연을 추증하고 부의를 보내노라”

생각하건데 경은 기량이 크고 깊으며 성질과 행실이 순량하고 근실하며 재능 또한 민첩하여 사직을 방어하는 지혜와 꾀에 빈틈이 없어서 가위 왕의 긴요한 신하요, 국가 보필의 근간이었도다.

우리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경을 발탁하여 군기(군사상의 비밀)를 맡기시니 경은 과연 사사로움을 잊고 의를 좇아 천명에 따라 힘을 다하여 위험이 절박했던 어지러운 난을 삽시간에 평정하였으니 그 충성과 용맹함은 산하에 맹세코 사람으로서 언제나 지녀야할 본보기요 떳떳이 지켜야 할 교훈이로다.

여러번 등용하여 총제가 되고 거듭 관직을 주고 회령군 장흥군에 봉하고 물건을 내려주어 보살피고 사랑을 다 하면서 의지했던 나라의 간성이었도다.

경이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 노모봉양 하기를 원하기에 보국숭록대부에 승진시키고 장흥부원군에 봉하여 만년의 휴양을 바랐더니 이 어찌 갑작스런 부음이란 말인가 아득한 저 하늘이 이 한 원로마저 타계하게 하니 마음이 비통하도다. 이에 장례식에 예관을 보내 영령에게 고하는 말씀에서 “오호라 즐거움과 근심걱정을 같이하며 집안 식구와 같이 정의가 두텁던 경의 옛 공적을 감히 잊을손가! 이승과 저승이 다르지만 우주의 근본원리는 매일반이라 믿으며 나의 지극한 이 마음을 살피리라 믿노라”하시고 “忠靖”이란 시호를 내리시다.

 

(3) 세종실록 충정공초록(世宗實錄 忠靖公抄錄 : 세종실록 가운데 충정공에 관한 것을 뽑아서 적은글)

長興府院君馬天牧卒天牧長興府屬縣會寧人洪武辛酉補散員累遷至大將軍己卯轉上將軍辛巳賜翊戴佐命功臣號尋加同知摠制壬辰出爲全羅道兵馬都節制使判羅州牧使甲午封長興君丙申改都揔制復出爲全羅道兵馬都節制使癸卯進判右軍府使己酉以老乞骸骨特授長興府院君命禮曹設宴餞別之賜祿奉如舊卒年七十四訃聞輟朝三日命內史往吊賜賻米豆幷三十石紙一百卷又命禮官致祭 諡忠靖險不辭難忠寬樂令終靖(世宗實錄卷第五十一, 十四面)

장흥부원군 마천목이 별세하다. 천목은 장흥부에 딸린 최령현 사람으로 홍무신유년(1381)에 산원(散員 : 정8품 무관)에 임명되어 누차 승진한 끝에 대장군(종3품)에 이른 후 기묘년(1399)에 상장군(정3품)에 승진하고 신사년(1401)에 좌명공신에 추대되었으며 동지총제(정2품)에 승진하고 신사년(1401)에 좌명공신에 추대되었으며 동지총제(정2품)에 승진한 후 임진년(1412)에 전라도 병마도절제사(약칭 병사) 판나주목사를 지내고 갑오년(1414)에 장흥군에 봉해지고 병신년(1416)에 도총관이 되었다가 다시 전라도 병마도절제사를 지내고 계묘년(1423)에 판 우군부사로 나아가고 기유년(1429)에 나이가 많아서 임금에게 사직을 청원하니 특별히 장흥부원군(정1품 공신)을 제수하고 예조에 명하여 전별하는 잔치를 베풀고 녹봉(봉급)을 전과 같이 내려 전별하다.

74세를 1기로 별세하시니 세종대왕이 부음을 듣고 3일 동안 조회(신하가 함께 모여 임금을 뵈옵는 아침인사)를 정지하여 애도하고 예조에 명하여 조상하게 하고 부의(賻儀)로 쌀 30석과 콩 30석 종이 1백 권을 하사하고 또 예조에 치제(국장)를 명하시다. 시호를 충정(忠靖)이라 하니 위험을 불사하고 낙국에 대처하는 것이 忠이요, 너그럽고 즐거운 마음으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세상을 마친 것을 靖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