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순상이공 현록 서(上巡相李公 顯祿 書)
상순상이공 현록 서(上巡相李公 顯祿 書) (순상 이현록께 올리는 글)
丁未四月全羅巡相李公諱顯祿到任後陳此送呈 (1727년 4월 전라도 순찰사 이공 현록께 부임 후에 이 진술을 보내드린다)
民以食爲天國以民爲天無食則無民無民則無國此必然之理也而斯民無祿 國家不幸水旱荐疊飢饉連仍八路域生齒半已鬼矣而惟我湖南其中尤甚十餘年來飢饉癘疫歲遘年疊保存者無幾矣乙巳之旱丙午之水振古所無枯旱水沈野無所收處處農民立視痛哭擧目千里所見愁慘孑遺殘民無望自保扶老攜幼散而之四父不慈子子不孝父恩情相隔倫序已斁强㬥者起以爲賊殘弱者散以塡壑而措手無地哀我湖民將至無遺矣趁此時大有別樣變通然後庶有保存矣此非如志遠藿食者之所可爲憂而今閤下以可治之資玉節南爲巡宜珍重海隅蒼生引領歎呼庶幾望至治之可期故略陳愚見以書嚴尊惶悚無已 一 設建 聖廟尊慕聖賢之道至矣盡矣而 國家教化之本源士生化育之道場其在事體至尊且重不可一日可忽處也近古以來紀綱懈弛士習不古列邑 聖廟之凋殘莫此爲甚而爲其守宰者越視秦瘠小無尊慕保護之意關繫 聖廟之事則勿論大小一委儒生終不動念此之寒心已極可駭而爲其儒生者莫知其事體端倪隨行逐隊只行其一時任掌而已故凡繫 聖廟之事日漸蕭疎百無一可而至於莫可收拾之境矣近因 朝家之令校生之名錄校案者元定額數之外自官盡爲括出充定軍役一自校生括出之後 聖廟尤有所難保者且有略干保奴分入使喚例是國典而州牧郡縣具各有數此則不可充定於軍役明矣而又因 朝家有各廳保奴破定之令幾盡括出充定於水陸之軍如是而 聖廟其何以保存成樣耶噫近來法令不嚴人心詐譎小民之有子家富者欲避軍役般附下吏名錄於各廳保奴以爲免役之資此實情狀之切痛故 朝家有破定軍役之令而鄕廳將廳諸處保奴則多般欺隱終不充軍惟吾 聖廟保奴則奸吏居中盡數告官致此無限痼弊噫莫重 聖廟反不如鄕廳將廳之爲重耶董子曰養士莫大乎太學而太學者賢士之所關也至哉言乎夫士者國家之元氣治民之綱維也賢士得行其道則國治民安不得行道則國亂民散有國而不可忽者太學明矣而到此難保之濱無一人守護者豈不痛哉幸今別擇經明行修可爲師表者差出學校師長日以講學力行爲急務又使列邑亦擇稍解經書者以爲一面之師擇其可教者教之而月之朔望各其面聚講面內儒生後講紙論報本官轉報營門以爲賞罰之地則士有稍進成才之望國有懷道抱才之士而士氣日漸作興頹俗亦可更化當今之第一急務莫大於此也 一 國初城池之設立其在陰雨之備意非偶然而太平百年邊陲無警忸於安逸無意於攻戰之俱凡諸軍兵之生疎城池之破毁莫今日爲甚而 朝家元無申飭之道方伯亦無關念之意視之尋常置之度外故各處城池幾盡頹毁至於莫可收拾之境一向抛棄終不收築猶爲國有人乎當今之日不幸有南北之釁則麾下無造錬紀律之兵境內無堅固保障之城出無戰勝之望入無收保之道也言念至此不覺痛哭軍兵器械各別嚴飭各處城池從速收築期於完築之地而此則不顧小節不日擧行者也 一 甲量已久地多閑曠之處故勿論沿海山峽上下農民勤耕力穡小有持保之道矣一經已亥新量之後寸地尺土無有遺漏峽中山腰沿海陳荒盡入於執卜收稅之地荷耟立視民無着手處而玆飜十卜之地則懲出百卜之稅故民以之失業土以之漸陳致有今日之艱難而尤極寃枉者稱以量後陳凡諸陳棄處一幷收稅此所謂白地懲稅者也民之寃痛莫此爲甚此則未看審前預爲變通新舊陳一從起耕收稅然後民生可保矣 一 盜賊偏滿白晝橫行殺掠甚衆而前後討捕不爲嚴治爲其官長者聽視尋常不卽跟捕故賊徒肆意日漸熾盛白晝奪金小無顧憚長此不已則非但爲道路行旅之憂也不知至於何許境而止也幸須嚴飭討捕各別跟捕又使所掌各邑這這譏察多般捕捉期於休息之地 一 飢饉癘疫前古所無死亡連續積尸相枕諸邑軍兵之物故者想必多矣若如常年之規待秋代定然後使免其懲布則十室餘一之民隣族之侵白骨之懲不勝支當必有踰山越海之擧分付各邑流離死亡究核檢尸從實牒報只懲其見存者然後誠可支保而檢核之際想多奸吏之欺瞞使其官各別嚴飭且營門多般譏察若得欺瞞者斷以軍法用事然後庶無見欺之患矣 一 近年以來歲凶連疊營門設賑之時不得已有興販之擧當初設立之計則存本取利賑救飢民之良策而法久弊生逐年層加勿論豊凶京司各衛門道內輸納之穀物散在列邑者自營預爲防納多放偏裨橫行各邑朝往暮來首尾相接驛路凋殘之弊因此層生列邑供饋之需難可繼進其弊不可不慮而利之大小與民相爭故民間難保之端日漸層加百弊俱興爲陷民溝壑之巨室而其條列色目之多所種種民瘼之滋甚不可盡錄故略陳興利爲弊之大槩此後則凡諸興販之路永爲防塞一切勿開則庶望道內小民之持保矣 一 近因歲凶自 朝家有嚴禁推奴之令或 方伯啓聞防塞此爲殘民保護之道可謂至矣而令雖如此爲勢者則無所不爲罔有記極而窮鄕無勢之人則雖使嗅婢僕逃居五六年則稱以防禁推奴不順於上典爲其上典者略施譴責則或有作黨驅逐者或有謀殺上典者見此綱常之變奔告官家則爲官長者聽以推奴者之例談視之尋常不卽聽理孤踽踪蹟懲治無階今年明年一向抛棄推彼叛奴輩釀成凶謀偃然作無主者然因此痼弊海隅遐方紀綱蔑如分義都喪若此不已實無奴主之分此亦不可不慮處也 一 大同常定一疋布價八斗作米而近來木花連値不實一疋價錢或過二兩而南土布直最高年事稍稔則一兩價米或十餘斗或七八斗以此計之則一疋所納米至二十斗許實似寃枉而惠廳元無增減之道故依例備納矣近値歲凶布直最下一兩價米不過二三斗則八斗米有剩於一疋價故此亦營門直爲防納以米懲捧於民民之寃痛當復如何名雖惟恤實反害民而與割肉充腹者小無間焉自今以後永杜防納之路勿用謬規然後小民無寃矣 一 道內扶安之地有邊山乃 國家禁養之所也環一山數百里之麓爲舡材板材之數而爲 國家需用之利不爲不多而近來法令不嚴人心益偸任掌輩之竊賣奸民輩之偸斫日漸月漬幾至於濯濯之境 國家利用之計抑不無兩失之策矣何者嘗觀邊山之內有一坼閑曠之坪百餘石作沓之壤以言其土則沃以言其水則灌倘作周民之田曾入禹貢之天則小民之蒙利不些 國家之經用小補而第緣禁養之所故平原膏腴之地至今抛荒一向等棄此實民情之歎惜也吾東偏小人物殷盛寸土如金錐地甚貴臨淄十年未見粟支之休河東千里每患匱財之則歎 國用之罄渴悶事之艱難無如今日惟宜片土不至陳棄毋使一夫不失産業亦爲今日之第一急務若使此土許民入耕則挈家而往居者不知其幾許人而其間必有大小上下人雜處焉擇其中有風力兩班者爲一面禁松之監官又使小民爲禁松之監考追日巡山使之禁養則將見長松之落落終爲松木之成村豈不美哉又不兩利乎如是定法則入居厥土者勿論上下自當禁松之任一木之犯禁者以法繩之一枝之犯傷者以律按之另加申飭各盡其力別樣禁斷乃者濯濯之患必非可憂者矣議者或以謂 國家禁養之所不敢出許民之議此則大不然也漢之蕭相國猶請天子之後園許民耕食漢土不患不廣而猶惟如是况吾東偏小之地而邊山之於上林其爲輕重之懸絶亦何如也耶伏願閤下倘以芻蕘之言爲可採而轉聞以爲擧行之地則 國家小民俱有幸甚矣
“백성은 먹고사는 게 하느님이고, 나라는 백성이 하느님이다. 먹고 살 수 없으면 곧 백성도 없고, 백성이 없으면 곧 나라도 없다.” 이것은 반드시 그러한 도리의 이치입니다. 이러한 백성들은 나라의 봉록도 없이 불행히도 홍수와 가뭄이 거듭되어 식량이 없어 굶주림이 잇따라서 조선 팔도의 지역에서 인구가 절반이나 이미 귀신이 되었습니다. 오직 그 중에서도 우리 호남이 더욱 심하여 10여년 이래로 오는 기근과 전염병을 해마다 만나고 해마다 거듭되어 보존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을사(1725)년 가뭄과 병오(1726)년 홍수가 진동하여 예로부터 가뭄으로 마르고 홍수로 침수된 적이 없었던바 전답에서 거둘 곡식이 없어 곳곳에서 농민들이 서서 그곳을 바라보며 통곡하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천리의 몹시 비참함을 바라보는바 몹시 처참하여 간신히 살아남은 외롭고 가난한 백성들은 바랄게 없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아이를 이끌어 흩어져서 가장 친한 4가지 부모형제지간에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자식은 아버지에게 효도하지 않아 은혜와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 멀리 떨어져 윤리의 질서가 이미 싫증이 나서 강퍅하며 난폭한 자는 일어나 역적이 되었기 때문에 가난하고 약한 자는 흩어져 골자기를 메움으로써 손댈 땅이 없고 가엾은 우리 호남 백성들은 장차 살아남는 것이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때를 틈타서 큰 특별한 모습으로 변통이 있는 연후에 그의 보존의 가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지원(馬志遠)과 같이 콩잎을 먹고사는 것이 아닙니다. 가히 근심되는바 지금 합하께서 다스릴 수 있는 자질로써 옥의 부절가지고 남쪽의 순찰사가 되었는데 마땅히 진귀하고 소중하게 바다를 만나는 땅 끝까지 모든 백성들을 잘 다스려 인도하시니 탄성과 환호를 지를 것입니다. 그의 바라옵건대 다스림의 기대함에 이를 것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견해의 진술로 간략한 글로써 엄숙하고도 존엄하여 황송하기 그지없을 뿐입니다.
1. 하나 성인의 사당을 세우는 것은 받들어 존경하며 사모하여 성인과 현자들의 도가 지극히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나라에 교화의 근원은 선비가 태어나 육성의 도를 닦는 장소로 그곳에서 일의 형체를 이루어 존경하고 또한 소중하게 이르게 되므로 하루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부터 지금이래로 기강이 해이해져 선비들로 배우는 것이 옛날 같지 않고 여러 고을에 성인의 사당이 쇠퇴하여 이보다 심한 적이 없으니, 그것은 고을 수령이 해야 되는 것인데도 남의 일보듯이 월나라가 진나라에 궁핍한 것을 보듯 조금도 받들어 공경하고 사모하며 보호하여 성인의 사당을 섬기는데 관계할 뜻이 없으므로 물론 크고 작은 것을 유생들에게 온전히 맡겼기 때문에 마침내 움직일 마음이 없으니, 이것은 한심하고도 몹시 놀랄 뿐이므로 그 유생이라는 것은 그 일의 처음과 끝의 형체를 알지 못하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게 됩니다. 다만 한때에 하급아전들이 행하여 이미 연루되었기 때문에 성인의 사당을 섬기는 일은 나날이 적막하여 백사람 중에 한사람도 없으며,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직접적인 원인은 조정의 령으로 교생들의 이름을 기록한 학생명부인 것은 원래 정한 인원수 이외에 관아로부터 모두 다 일괄 차출해서 군역에 모두 충당하고 교생 한사람으로부터 일괄 차출한 후에 성인의 사당이 더욱 보존하는 어려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약간 관아노비들은 나누어 들어와서 잔심부름하는 사환의 예도 마찬가지로 이 나라의 법이 있고 주 목사, 군수, 현령 모두 각자가 갖추어 이러한 숫자가 있으면 군역에 충당할 수 없는 것이 명확합니다. 더욱이 조정으로 인하여 각 청에 있는 관노비 숫자를 정하는 령을 깨뜨려 그의 다 차출하여 수군과 육군에 정원을 충당하는 것이 이와 같으면 성인의 사당을 어찌 모양을 갖추어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아! 근래의 법령이 엄하지 않아 사람들의 마음이 간사하여 그것으로 가난한 백성들을 기만하는 부자 집 자식들이 있는 것입니다. 군역을 피하고자 하급관리의 아전에 의지함과 같을 정도로 각 관청관노비의 명부에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군역을 면하는 바탕이 됨으로써 이러한 실정의 상태를 통렬히 자르는 까닭은 조정에서 군역을 정하는 령을 깨뜨려버렸기 때문에 고을에 향청과 지방병영의 장청 모든 곳의 관노비는 여러 가지로 속이고 숨겨 마침내 군역에 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인의 사당노비들은 간사한 아전들이 사는 한 가운데에서 모든 인원수를 관리자에 이르러 보고하는 이것은 무한한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아! 막중한 성인의 사당을 돌이켜 고을의 향청과 지방병영의 장청 같지 않은데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겠습니까? 동중서(董仲舒)가 말하기를 “현사를 키우는 데는 태학보다 중대한 것은 없으니, 태학이라는 것은 어진 선비들이 관계되는 것입니다. 지극히 옳은 말이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선비라는 것은 국가기운의 으뜸으로 백성들에게 나라의 법도와 기강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어진선비가 그 도를 펼치면 나라는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리는데, 도를 펼치지 못하면 곧 나라는 혼란하여 백성들은 흩어져 나라가 있으면서 태학이 아무리 밝아도 차마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르러 온 나라 땅 끝까지 보호하기 어렵고 한 사람도 지켜 보호하는 자가 없는 것이 어찌 통탄하지 않겠습니까? 다행이도 지금 특별히 가려서 경전에 밝고, 덕행을 닦아 가히 학식과 덕행이 높아 모범이 될 만한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학교에 차출된 스승은 온종일 학문을 닦고 힘써 부지런히 가르침으로써 긴급히 힘써야 할 일이고, 더욱이 여러 고을로 하여금 또한 점차 경서를 읽고 풀어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한결같은 면으로 그 가르칠만한 자를 스승으로 선택하는 것은 그것을 잘 가르치기 때문이고, 월초에 각기 모이는 면을 바라는 것과 유생들의 내면을 가르친 후에 강의로 익힌 시험지에 논하여 본관의 향청에 보고하고 돌려 다시 지방의 병영의 영문으로 보고하는 것은 상과 벌의 자료로 삼기 때문입니다. 선비가 점차 더 나아감이 있어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나라에서 바라는 것이니, 뜻을 품고 재주를 가지고 있는 선비가 있으면 사기가 날마다 점점 더 일어나게 되고, 퇴폐한 풍속을 또 다시 교화 시켜야 하므로 마땅히 지금 제일 급한 업무가 이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1. 하나 국가가 처음 세워지는 무렵에 높은 성과 깊은 해자가 있도록 만들고 세워서 위험을 미리 방비하고 있는 것은 우연한 뜻이 아니고 백 년 동안 걱정 없는 태평성대로 편안하여 변경에서 편안하고 한가함에 침범당하는 부끄러움에 경계함이 없고, 공격하는 싸움에 함께할 뜻이 없으니, 무릇 모든 군의 병사들은 생소하고 성과 해자는 무너져 헐어버리고, 오늘날 같이 심한 적이 없고 조정에서 원래 도의 감사를 타일러 경계하여 지시함도 없으며, 또한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는 생각의 뜻이 없고,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예사로 여기며 내버려두고도 문제를 삼지 않는 까닭은 각처의 성과 해자가 그의 모두 다 무너져 헐어버려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대로 방치하고 버려두기 때문에 마침내 성을 거두어 쌓을 수 없는데도 오히려 나라를 위한다는 백성이 있겠습니까? 오늘날을 당하여 불행히도 남인과 북인의 피바람의 분쟁이 있어 장군아래의 병사들은 단련을 비롯하여 기강과 법의 질서가 없으며, 국경 안에서 견고이하고 튼튼히 성의 장애가 없도록 보호하는 것이 없으니, 나가서는 전쟁의 승리를 바라봄이 없고, 들어와서는 거두어 성을 보호하는 도가 없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깨달을 수 없어 통곡하고 군의 병사와 무기들을 각별히 엄하게 타일러 경계하고 명령하여 각처에 성과 해자를 거두어 쌓는 곳을 완전하게 하는 것보다 쌓는 기간을 되도록 빨리 하는 이것은 곧 간략하게 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고서는 일을 거행하는 때가 아닌 것입니다.
1. 하나 갑술(1634)년 토지측량의 양전했을 때 이미 유래가 오래된 지역으로 많은 개간을 하지 않아 묵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물론 연해와 산골짜기는 위아래 농민들은 부지런히 논밭을 갈아 힘써 농사를 짓고, 작게나마 가지고 있는 것이 보전할 방법인 듯합니다. 일종의 기해(1719)년 새로 측량한 후 얼마 되지 않는 땅은 한자의 작은 땅도 산골짜기와 산중턱에 있는 것이 빠지거나 새어나감이 없고, 연해지역의 개간하지 않아 묵혀서 거칠어진 땅의 세금을 매김에 모두 다 들어와서 세금을 거둬들이는 땅을 백성들이 쟁기를 짊어지고 우두커니 서서 쳐다보며 손댈 곳이 없는데, 이 엎어진 10복의 땅에 100복의 세금을 징수하러 나오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곳의 땅으로써 생업을 잃어버리고, 그곳에 이르러 개간하지 않는 묵은 땅이 점점 늘어남으로써 오늘 날의 몹시 힘들고 괴로움이 있어 더욱이 원통하고 억울함이 극심한 것을 일컬어 묵은 땅을 후에 측량함으로써 무릇 모두 묵혀서 버리는 곳을 하나같이 아울러 모두 세금을 거두어들이니, 이것은 이른바 아무것도 없는 땅에 세금을 징수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몹시 억울하고 원통하여 이보다 심한 적이 없고 이것은 곧 미리 자세히 조사하여 살피기 이전에 찾아 볼 수가 없어 옛날과 새로이 묵혀둔 땅을 변통을 하여 한번 일구어 농사를 지어서 세금을 거둔 연후에야 백성들의 삶을 보전 할 수 있습니다.
1. 하나 도적이 가득하여 밝은 대낮에 펼치어 여기저기 제멋대로 날뛰고 살육과 약탈무리가 매우 심한데, 앞뒤로 진압하는 토포사는 엄중하지 않아 그 관의 우두머리가 되어 다스리게 되는 것이 보고 듣고를 예사롭게 여기고 즉시 붙잡지 않기 때문에 도적의 무리들이 함부로 제멋대로 하여 날로 점점 더 성해져 밝은 대낮에 돈을 빼앗아가도 조금도 관의 장이 꺼리고 두려워하여 돌아봄이 없으니, 이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비단 도로를 다니는 나그네들의 근심이 될 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다행이도 모름지기 엄중하게 타일러 경계하고 명령하여 무력으로 진압하여 붙잡아 각별히 뒤따라가서 붙잡고 또 관장하는바 업무로 하여금 각 고을을 낱낱이 수소문하여 검문하고 살피어 여러 가지의 기회로 휴식하는 땅에서 붙잡아야 합니다.
1. 하나 굶주림과 전염병에 걸려 지난날에 없었던 일이나 죽는 사람이 끝나지 않고 지속하여 시체를 쌓아 서로 베개를 삼고, 모든 고을의 군사들도 죽은 것을 생각하니 틀림없이 많습니다. 만약 일 년 내내 규정이 같다면 가을을 기다려 다른 규정으로 바꾸어 대신사용한 그런 연후에 그 베를 징수하는 것으로 하여금 면하고 방10개 중에 나머지 하나의 백성들은 이웃과 친족을 침범하게 되고, 죽은 사람의 백골에게도 징수하므로 버티고 지탱하여 견디어 냄을 감당하지 못하고 반드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떠나 가버리는 일을 당하여 각 고을에 분부를 내려 정처 없이 떠돌아 사망하는 자를 상세히 확인하여 시체를 검사하고 따라서 사실대로 서면으로 보고하여 오직 그 살아 있는 자에게만 징수한 연후에 진실로 버티고 지탱하여 보전하는데, 검사하고 확인할 즈음에 생각건대 간사한 아전들이 그럴듯하게 속이는 기만이 많아 그 관아로 하여금 각별히 엄하게 타일러 경계하여 명령을 내리고 또 지방병영의 영문에서 여러 가지로 수소문해서 검문하여 살펴서 만약 기만한자를 잡으면 군법으로 사용함으로써 단호히 다스려 단죄한 그런 후에는 거의 속이는 우환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 하나 근년이래로 해마다 흉년이 잇달아 겹쳐서 지방병영의 영문에서 굶주린 사람을 구제하는 진휼청을 설립할 때 어찌할 수 없이 다시 판매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처음 만들어 세운 계획은 본전을 그대로 두고 판매의 이익을 취한 것을 진휼청에서 굶주린 백성들의 좋은 계책으로 구제하였는데, 좋은 법도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므로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한층 더하니, 물론 풍년과 흉년은 서울중앙관사의 각 아문에서 도내에 수납된 곡물을 풀어서 여러 고을에 저장되어 있는 것을 미리 병영으로부터 참여하여 다른 사람이 대가를 받고 대신 납부하므로 더 많이 받아내게 하여 군영의 부장들이 각 고을에서 제멋대로 행동하여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머리와 꼬리가 서로 맞닿아 돌아오므로 역로가 말라 시들어진 폐단은 이로 인하여 여러 고을에서 거듭하여 일어나 윗사람에게 바치는 수요의 폐단이 계속 이어나가기가 어려워 그 폐단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고, 이익의 크고 작은 것과 더불어 백성들과 서로 다투는 까닭은 백성들 간의 보전하는 실마리 단서가 어렵기 때문에 날로 점점 더 증가하여 온갖 폐단이 함께 일어나서 백성들은 거대한 명문집안의 세력구덩이에 빠지게 되고, 그 조목조목 열거하여 여러 종류의 목록들이 많아 다양한 종류들로 백성들은 병들어짐이 점점 더 심하여 다 기록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이익이 일어나는 데에 폐단이 크게 되고, 대개 그러한 후에 무릇 모든 판매하는 길이 일어나므로 영원히 일절 열리지 못하도록 막고 방지하여야 합니다.” 여러 도내 가난한 백성들이 가지고 보전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1. 하나 직접적인 원인은 흉년이 들어 조정으로부터 엄격하게 도망간 노비를 찾아오는 금지의 령이 있어서 간혹 지방장관인 감사가 막고 방어하는 것을 듣고 임금에 알리는 이것은 살아남은 가난한 백성들을 보호하는 도리가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고 명령이 비록 이와 같으며 권세가 되는 것은 곧 못할 것이 없는 무소불위의 기율이 몹시 어그러지고 궁벽한 시골사람들의 세력이 없어 비록 냄새나는 계집종과 사내종들로 하여금 도망가서 5~6년 살게 되면 일컬어 도망간 노비를 찾아와도 상전인 주인에게 따르지 않는 것을 막아서 금지함으로써 그 종의 주인이 되는 자를 간략히 잘못을 꾸짖고 타일러서 시행하고 혹 한 패의 무리를 이루어 몰아내려는 자가 있고, 혹 미리 일을 도모하여 주인을 죽이는 자가 있습니다. 이러한 질서와 도리에 어긋나는 변고를 보고서 곧 관아에 달려가서 알리면 관의 우두머리가 되는 자는 듣고 도망간 노비를 찾아오는 자의 일방적인 말들만 보고 듣고서 찾음으로써 항상 즉시 송사를 자세히 듣고 조사하여 옳고 그름을 처리하지 않고 홀로 외로이 행적의 자취를 따라 징계하고 올해와 내년의 질서 없이 다스려 언제나 한결같이 저들을 미루어 포기하여 주인을 배반한 종들을 음흉한 모략의 원인을 만들고 거드름을 피우고 건방져 주인이 싫어하는 짓을 하며 그러나 이 고질적인 폐단을 먼 지방의 바다 땅 끝까지 법도와 질서의 기강을 업신여겨 분수에 맞는 도리를 손상시킬 것 같고 만약 이와 같은 일을 그만 두지 않는 다면 실지로 노비와 주인인 상전과 구분이 없어 이 또한 어쩔 수 없이 생각하여 처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이와 같은 일을 그만 두지 않는 다면 실지로 노비와 주인인 상전과 구분이 없어 이 또한 어쩔 수 없이 생각하여 처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하나 대체로 항상 정한 것이 같아서 베 한 필의 값이 벼 한 섬에서 여덟 말을 받고 나머지를 방아 삯으로 주는데, 근래에 목화의 연이은 열매를 맺지 못함을 당하여 한필의 가격이 혹 두 냥에 지나고 남쪽 땅의 베 값이 최고로 농사가 풍년드는 해로 한 냥의 가격이 쌀로 혹 10여말 혹은 7~8말로 이 모두 합쳐 계산함으로써 곧 한필의 쌀로 세금을 내는바 20말가량 정도로 이르니, 실지로 원통하고 억울할 것 같으므로 쌀 포전을 관리하는 혜청은 원래 양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도리가 없기 때문에 이전의 예에 따라 갖추어서 납부합니다. 요즈음 흉년을 당하여 베 값이 최하로 한 냥 가격이고 쌀로 2~3말에 지나지 않아서 8말의 쌀이 한 필보다 더한 가격이 있는 까닭은 이 또한 영문의 값이 대납의 부정으로 더 받아내기 때문에 쌀을 백들에게 징수해 더 받아냄으로써 백성들이 억울해하고 원통하여 당연히 어떤 명분같이 비록 오직 불쌍히 여기는 것이 실지로 돌이켜 백성들을 해롭게 하고 더불어 살을 베어내어 배를 채우는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지금부터 이후로 영원히 대납의 부정으로 더 받아내는 길을 막아서 잘못된 규례를 적용하지 말아야 하고 그런 연후에 가난한 백성들의 억울하고 원통함이 없을 것입니다.
1. 하나 도내 부안 땅에 변산이 있는데 마침내 국가에서 나무를 베지 못하게 금지하는 곳입니다. 온 산을 둘러보면 수 백리의 산기슭에 선박의 재료와 목판의 재료의 수효가 되고 국가를 위해서 반드시 써야하는 이로움에 사용하는 것이 많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근래의 법령이 엄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탐하여 하급관리 아전들이 훔쳐서 팔고 간사한 민간잡배들이 나무를 몰래 베어 훔쳐가는 것이 날로 진보하고 달로 젖게 하여 거의 산이 벌거벗은 민둥산의 지경에 이르게 되어 국가에서 이로움에 사용하는 계획을 억눌러 양쪽 다 잃어버릴 계책이 없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찍이 변산 안을 둘러보는데, 하나를 알려주기를 “개간하지 않은 묵은 넓은 땅의 평수로 논농사를 지으면 100여석이 나오는 땅이라” 했습니다. 그 토지로써 말하자면 비옥하고 그 수질을 말할 것 같으면 곧 물의 관배수가 농사짓기에 빼어나서 주변 백성들의 논밭은 일찍이 물을 다스렸던 하나라 우(禹)임금을 하늘에서 천거하여 내려 들어오니, 가난한 백성들의 이익을 얻는 혜택이 적지 않아 국가의 경영에 조금 보태서 사용하는데, 그러나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는 곳이기 때문에 넓은 평원의 들판은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라 지금도 돌보지 않고 한결같이 내버려 두니 이것은 실지로 백성들의 사정과 형편에 한탄하고 애석한 것입니다. 우리 동쪽 편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소유물이 한 치의 땅도 번화하고 풍성하여 설화에 나오는 금추의 땅 같이 매우 귀한 전라도 영광 백수면 임치에 10년간 지탱하는 곡식을 그치는 것을 보지 못했고, 하동 천리는 매양 재화가 고갈되어 모자라는 것에 걱정을 하며 나라재정이 텅 비어있으니, 탄식하여 답답한 심정이 몹시 힘들고 괴로운 일이 오늘날과 같음이 없고, 의당히 한조각의 땅도 이르지 않음이 없이 개간하지 않아 묵혀 버리지 말며, 한 사람으로 하여금 산업에 손실이 없어야 하고 또한 오늘날 제일 급한 업무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이 토지로 하여금 백성들이 들어와서 농사를 짓도록 허락한다면 온가족을 데리고 와서 그곳에 가서 살아야 할 것인데, 몇 사람을 허가해야 할지 알지 못하니, 그 기간이 반드시 많고 적고, 윗사람과 아랫사람 섞여 사는 곳이 있어야 할 따름입니다. 그 중간을 선택하여 풍토의 위력을 가진 양반들이 있는 것은 온전한 면으로 감독관을 두어 소나무 벌채를 금지하고 더욱이 가난한 사람으로 하여금 소나무 벌채를 금하도록 관리 감독하여야 합니다. 날마다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으로 하여금 산을 살피며 돌면 장차 큰 소나무가 긴 가지가 많이 늘어진 것을 볼 수 있어 마침내 소나무 숲으로 마을을 이루게 될 것인데,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더욱이 양쪽의 이로움이 없겠습니까? 이와 같이 정해진 법으로 그 땅에 들어와 머물러 사는 것은 물론 위아래에 스스로 응당히 소나무 벌채를 금지하는 책임을 맡아 소나무 하나라도 베어 금지된 법을 범하는 자는 그를 법으로써 포박하고, 한 가지라도 꺾어 법의 손상을 범하는 자는 그의 죄를 조사함으로써 각별히 더 타일러 경고하고 명령하여 각별히 그 힘을 다하여 지난번의 본보기로 특별히 조처를 내려 금지시키는 것은 민둥산의 걱정을 반드시 우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논하는 자는 혹 나라에서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금하여 가꾸는 장소라 이를만함으로써 그것을 백성들에게 이러한 논의를 허락하면 감히 나가지 않을 것이므로 절대로 그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나라의 상국인 소하(蕭何)는 오히려 천자에게 후원을 백성들에게 먹고 살도록 농사를 짓게 허락하도록 요청하여 한나라 땅이 넓지 않은 것에 근심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오직 이와 같은데 하물며 우리 동쪽편의 작은 땅에서 변산의 상림에 대해 그 가볍고 무거운 격차가 현격히 차이가 나는데도 또한 어찌 같다고 하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합하께서 갑자기 하찮은 사람의 말로써 채택할만하고, 다른 사람에게 간접적으로 듣고서라도 그 땅을 거행하게 될 것이므로 곧 국가는 가난한 백성들과 함께 매우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진시폐 상순상이공 현록 서(陳時弊 上巡相李公 顯祿 書) 마지원(馬志遠) 2022년 1월 16일 일요일 八世孫 硄德 永鉉 謹譯 (8세손 광덕 영현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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