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자 小石馬在德
작성일 2011-01-26 (수)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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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보 마씨대종보의 역사적 허구에 대하여
안녕하십니까? 제족여러분!
인터넷이나 일부 족보관련 자료에 신유보 "마씨대종보"의 잘못된 자료가 실려 있어 우리 유구한 장흥마씨를 욕되게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 고심하다가 아래와 같이 짧은 소견으로 문제를 제기합니다. 제족 여러분께서는 아래 글을 읽어보시고 문제점이나 고쳐야 할 점을 허심탄회하게 토론 할 수 있도록 이메일
jjddma@hanmail.net으로 연락 주시면 겸허하게 토론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저의 불찰이 있다면 즉시 시정토록 하겠아오니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의도는 제족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장흥마씨 홈 페이지 활성화에 도움이 될까해서 올려봅니다.(핸폰:010-2242-2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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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酉譜 <馬氏大宗譜> 歷史的 허구에 대하여



                                        小石  馬 在 德



  1. 1981년 7월에 간행된 신유보(편찬인:馬萬走, 발행인:馬氏大        宗譜編纂委員會) 마씨대종보의 1페이지에 따르면



   “마씨상계”에 “馬韓國”은 우리나라 고대 씨족적 부족국가로서 辰韓, 弁韓과 아울러 삼한중의 하나이다. 오십여 소국으로 형성되고, 영토는 충청,전라도에 걸쳐 있는 나라이다. 마한의 땅위에 백제가 건국되었다. “馬謙(마겸)”: 공이 마한국의 창건주라 문헌에 전한다. 또 공의 증손 馬桓(마환)이 臣智(신지)(목지국의 맹주)라 전하고 있다. 마씨의 성은 고대 씨족사회의 족 명으로 개마(蓋馬)의 馬에서 유래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姓(성) 즉 씨족 명을 그대로 계승하여 온다.


  그리고 馬浣(마완):중국 양성인이라 전한다.(舊譜에서). 子(그의 아들) 壯(장)(莊의 오기 임): 공은 은 말에 주왕이 폭정을 하므로 경서를 가지고 잠적하였다. 공은 원래 복희씨의 팔괘와 홍범구주의 이론에 출중하였으므로 周 武王(주무왕) 삼십삼 년에 기성(箕聖:기자를 높여 이르는 말)을 따라 동래하여 의관과 문물을 제도를 개혁하고 팔조교무와 정전법과 견도지법(甄陶之法:질그릇 만드는 법) 등을 창안 시행케 하고 중화의 제도를 쫒아 의결기관을 설치하였다.(기자본전에서)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시조에는 마려(馬黎)로 표기하고

 (한문 원문 생략) “삼가 생각하건데 기지의 종신<諱 莊>으로부터 좌보공<諱 黎)>에 이르기까지 일천 일백여 년이 되고 좌보공으로터 백제의 부흥장 휘 陸沉公(육침공)에 이르기까지 기간(其間)의 문헌이 없고 징험(徵驗)할 수 없어서 계대를 실전하였다. 그러나 휘 육침공 이래 목천에 세거하였다. 고려조에 휘 점중이 계시니 그의 적장자 휘 현(鉉)은 목천의 관조이고, 차자의 휘 혁인(爀仁)은 장흥의 관조이시다. 육침공의 이하는 옛 부터 내려오는 가승에 의거하여 명문으로 소상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그리고 기타 역사서에 나오는 분 마대운외 13명(마곤우,마윤성,마시연,마선호,마철원,마직정,마수언,마장석,마루,마선구,마무,마유성,마윤충)을 적어놓고 있다.

(註: 상기한 휘종(諱宗)외에 백제 무왕 시의 馬東方 및 고승 馬迹(마적) 등 많은 인물이 단군고기 백제기 삼국사기 동국강목 문헌비고 여지승람 일본서기 등에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한 관계를 소명키 어려워 다만 시대 순에 준하여 배열 기록 하였다. 참조 마씨씨족사)



가.상기의 내용이 실린 신유보인 마씨대종보를 마만주씨가 각 도서관 관련      단체 등에 기증하였고, 이 내용을 근거로 옮기는 이들이 마한국의 국주       인 마겸을 마씨의 鼻祖(비조)로 적고, 시조에는 마려(馬黎)님을 기록하      여서 현재 족보 관련 도서나 씨족 관련 문서에 마씨의 시조는 마려로       올라가는 悖倫(패륜)이 자행된 것이다.



 나.신유보의 “마씨상계”에 실린 비조 마겸과 시조 마려(*정통족보에는 비조      는 표기가 없고, 시조는 마완, 동래조는 마장, 관조는 마려, 중시조는 고       려 선종 때의 판개성윤인 마혁인으로 기록되어 있음)의 역사적 사실의     불일치에 대하여는 아무도 검토하는 이가 없습니다.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따르면 온조는 전섭,마려등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남하한 후 풍납토성에 수도를 정한 후 마한을 정복하여 나라를 강성하게 건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바, 이는 삼국시대 이전의 마한은 이미 부여(고구려)의 유민인 온조가 정쟁에서 패하여 남하하기 이전에 부족국가를 건국하고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므로, 마한국의 국주인 마겸이 마씨의 직계라는 설과 마려님을 시조로 하는 주장은 백제를 건국한 온조에 의해 정복당한 마한국의 국주와 마려님을 시조로 연결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는 전혀 맞지 않은 엉터리 가설이고 주장이다. 즉 정복당한 마한의 국주와 마한을 정복하는데 공신인 관조 마려 선조님과 연결하는 것은 전후가 맞지 않은 억지일 뿐이다.



  다.왜 마만주씨는 마겸과 마려님을 억지로 연결하여 마려님을 시조로 각색       하여서 마씨대종보를 발간 하였을까하는 의문을 풀어보기로 하자.



 우선 정통족보에는 기자를 따라와서 기자조선을 건국할 때 함께 동래한 동래조 마장님의 아버지인 마완(馬浣)님을 시조로 하고, 그 뒤 백제건국의 원훈이신 마려님을 관조(貫祖:본관을 장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유를 가지신 조상님을 일컬는 말)로 기록하고 있으며, 중시조(마씨의 중흥을 이루고 계대가 계속 이어지는 일세조를 일컬는 말)는 고려시대 중기 선종 때 마혁인님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의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적인 思潮(사조)가 한국적(토착적) 민주주의(유신시대)였다는 것에 그 근원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사대주의나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 독립적인 사상이 필요한 시기에 기자를 따라 동래한 동래조 마장과 아버지인 마완님을 시조로 모신다는 것은 그 때의 마씨대종보의 주장은 우리 마씨는 중국에서 도래하거나 연유하지 않은 한국의 토착성씨라는 주장을 강하게 하다 보니 정통족보를 부정하고 어정쩡하게 족보의 첫 페이지에 구 족보에 나오는 기록을 표기는 하되 시조나 동래조라는 명칭은 없애고 삼한시대를 끌어드려 마한국을 표기하고 마겸을 기록하여 순수한 토착성씨라고 하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고 정통족보에 관조로 표기되어 있는 마려님을 시조로 각색하여 명실상부한 토착성씨라는 주장을 구성한 것이다. 원래 토착성씨인 우리 마씨를 중국에서 건너온 동래 성씨로 표기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한 마씨대종보는 절대 역사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 아닌 것이다. 기자가 동래하여 세운 기자조선은 마씨대종보가 발간되는 시기에는 일제의 역사 교육에 기인한 역사학자(이병도류)들은 존재 자체를 부정하였고 더구나 단군조선도 설화로 치부하거나 전설로 폄훼한 사실이 정설로 학계에서 인정받던 시기이니 마씨대종보도 그 시대의 산물로 잘못 태어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정통학자들은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위만조선 모두 다 인정하는 것이 역사의 정설이고 기자가 동래해 온 은나라는 우리 한민족(동이족)이 세운 나라라는 것이 정통이다. 게다가 중국의 역사학자들도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인정하는데 일본사학자들에게서 일제시대에 배운 학자들이 일본의 일본서기와의 역사적 기록을 꿰맞추기 위해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존재를 부정한 엉터리 주장과 유신시대의 한국적(토착적) 민주주의에 영향을 받아 마씨대종보가 발간될 1981년도에는 기자조선이 실존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에 따르다보니 정통족보의 기록을 왜곡하여 앞뒤가 맞지 않는 마한과 백제를 연결하는 우를 범하는 동시에 우리 장흥마씨에게 패륜을 저지르게 된 배경이라 짐작해본다. 족보 발간도 그 시대의 일정한 산물이라는 근거로서 말씀드리면 기자 동래설도 시대의 산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겠다. 하지만 정통으로서 우리 장흥마씨가 인정하는 한 정통성과 정체성은 함부로 후손된 도리로서 변경 윤색 각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구나 폄훼해서는 더욱 안 되는 것이다.



 라.장흥마씨는 토착성씨가 아니고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인가?하는 의문에        대한 답변

    우리 장흥마씨는 은나라에서 동래한 마장님의 아버지를 유교의 도에 따라 마완(馬浣)님을 시조로 모신다. 여기에서 은나라는 우리나라의 역사인가 아니면 중국의 역사인가의 문제를 짚어보자. 중국의 하나라, 은나라는 우리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다. 중국 한족이 최초로 세운 나라는 주나라이다. 중국 역사와 우리나라 역사를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는 시기는 고조선시대부터 가능하지만 동이족이 거주하고 있었던 몽고와 내몽고지역 동북 삼성지역, 지금의 북경 이북 지역, 산동지방 등은 우리나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지역이다. 고조선 시대 양성지역은 산동 반도의 어느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이칼호에서 동서로 나뉘어 이동을 시작한 동이족이 몽고의 초원을 지나 내몽고를 거쳐 일부는 백두산을 근거로 하여 고조선을 세우고 일부는 중국 북경을 지나 산동성 까지 진출하여 살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기자가 동래하여고조선이 건국되어 있는 평양성으로 진출한 것을 기자동래라 한다. 이때 기자를 따라 동래하신 마장님이 우리 마씨의 동래조이다. 따라서 현재의 지도와 편협 된 역사인식으로 살펴보는 우를 범하면 은나라는 중국의 역사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한다. 기자가 살던 그 시대는 은나라도 우리나라라고 주장하면 억지로 보일지 몰라도 동이족인 세운 동이족이 주류인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토착성씨라는 글자에 얽매여 장흥마씨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폄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 마씨는 고조선 시대에 뿌리를 둔 명실상부한 토착성씨로 수천 년을 이어온 씨족이다. 1970년대 왜곡된 학문의 사조와 정치적인 영향을 받아서 마씨의 정통성도 부정하고 마씨의 역사 근거인 고조선을 버리고 마한에 그 근거를 삼은 것은 결국 우리 마씨의 역사를 일천년 이상 줄이는 동시에 백제건국 원훈이신 마려님을 시조로 변조하는 패륜을 범하는 실수를 한 것이다.

 더구나 마씨대종보 첫 페이지 마장님에 관한 기록을 옮기면서 “중화(中華 )제도를 쫒아 의결기관을 설치했다”는 글에서 마씨대종보 편찬자의 역사인식을 살짝 엿 볼 수 있다. 은나라를 현재의 지도 인식아래 중국(중화민국)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는 편찬자가 우리나라 고대사를 깡그리 부정하는  우를 범하는 동시에 장흥마씨에게 패륜을 저지른 것이다.



  마.馬姓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개마(蓋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우리 마씨가 馬씨라고 사용하게 된 배경을 개마(개마고원에 길렀던 蓋馬)에서 비롯하여 우리 마씨가 개마(蓋馬)고원에서 개마를 기르고 관리했던 부족명에서 마성(馬姓)이 유래하였다는 설이 마씨대종보의 주장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은 주장이다. 개마(蓋馬)가 존재한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나 근거를 역사적으로 사료를 확인 할 수가 없다. 설사 개마가 존재했다고 해도 우리 마씨를 개마에 국한해서 유래를 한정하면 너무 협소한 주장이 아닐까 한다. 우리 마씨는 고구려, 백제, 통일신라시대에 존재했던 기록이 각종 역사서에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 존재했던 성씨임에 틀림없고 다만 여러 가지 가정으로 추측해 볼 때 부족국가 시대 이전 씨족사회일 때 말(馬)과 관련된 씨족이나 부족이 존재했고 이를 나타내는 부족 명으로 나타냈던 마씨가 결국 마성(馬姓)의 유래가 아닌가 생각한다. 선사시대부터 말은 존재했고 말은 신성한 분들, 앞서가는 부족들만이 사육하고 이용해왔을 것으로 추측이 가능한 것을 생각해보면 개마에서 그 유래를 찾는 것은 너무 협소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바. 마씨 14명을 나열해서 우리 마씨 선조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삼국사기 백제 편에 보면 윤충은 의자왕 때 좌평으로서 성은 백제 왕족인 부여씨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마씨대종보는 무슨 근거로 부여씨를 우리 마씨로 기록했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다른 여러 분들은 마씨로 기록이 나온다. 타 성씨가 이를 알면 마씨의 수치가 될 것이다. 오죽 못 났으면 남의 성씨와 조상을 우리 조상으로 윤색 변경해야 했겠는가라고 불쌍히 여기고 우리 장흥마씨의 족보와 정통성을 우습게 하는 내용이다. 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물론 그래서 신유보인 마씨대종보는 폐보가 된 것이다.



2. 신유보에서 마씨 중시조로 표기되어 있는 백제부흥장 마육침     (馬陸沉)(둘째 페이지의 기록)도 역사서에 근거나 기록이 없는     가공 인물이다.

   내용인 즉 “중시조<1세> 諱 陸沉 : 백제가 나.당 연합군 의하여 唐歷 龍朔 三年(당력 용삭 삼년) 신라 무열왕 계해 663년에 멸망한 후에 공의 조종께서 누대에 亘(긍:걸칠 긍자)하여 백제부흥전을 전개하여 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공은 일찍이 군사를 일으켜서 옛 목지국의 성거산(현 직산)을 중심으로 변방일대를 점거하여 크게 싸우며 세력을 넓혔다. 그 후 대악군(현 천원군)으로 이거하여 백제의 재건을 도모, 그의 세력이 冲天(충천)하였을 때가 당무제 后 會昌六年 병인 서기 846년이다.” 라고 적고 있다.


   가.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타 관련 역사서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백제부흥장 마육침은 존재하지도 않는 가공인물이다. 유사한 이름인 도침(道沉)이 존재하나 도침은 백제왕실의 부여씨로 기록이 나온다. 마씨대종보는 도침에서 음을 차용해 육침을 만들었다면 이는 말도 안 되는 각색인 것이다. 게다가 백제부흥 운동이 실패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부흥운동을 실패한 육침이라는 인물이 마씨의 중시조로 계대를 이어올 수 있었다는 가설은 아예 맞지도 않은 허위의 기록임에 틀림없다. 차라리 목천과의 복고대종을 위해서는 고려시대 실존 인물을 내세워 계대를 만들었다면 역사적으로는 그를듯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마씨대종보는 이와 같이 역사에 없는 가공인물을 내세워 목천과의 복고대종을 했으나 너무 장흥마씨 정통족보와 다르고, 내용도 엉터리라 장흥 측에서 폐보를 결의한 것이다. 마씨대종보는 중시조로 내세운 백제부흥장 마육침과 그 이하 9세를 가공 연결하여 우리 마씨의 상계를 만들고 11세에 이르러 목천관조에 鉉(현), 장흥관조에 혁인(爀仁)으로 분파하게 만드는 패륜을 자행한 것이다. 목천파에서 1936년에 발간한 목천세보의 서문과 본문을 살펴보아도 경수((坰秀) 선조님 이전의 기록은 실전하여 애석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편찬자는 마해송(湘圭로 기록)선생의 큰형인 마온규(溫圭)씨임)

이에 마씨대종보에 따른 마씨의 역사를 기술한 시중의 족보 관련 기록은 모두 근거가 없다 하겠다.



 나.백제부흥전의 약사를 보면(연도순으로)

     <660년     7월  백제 멸망

                 8월 임존성을 거점으로 거병

      661년    2월  백제부흥군 사비성 공격

                3월  백제부흥군 주류성 확보

                4월  소정방 고구려 공격

                9월  *산성을 빼앗아 웅진으로 가는 교통로를 확보

      662년    2월 소정방 평양 포위

                7월 당군 웅진 동쪽 지역 백제부흥군에게 승리

                8월 나당연합군 진현성 함락 시켜 신라 군량 운반로 확보

                12월 백제부흥군 장기전을 위해 거점을 주류성에서

                     피성으로 옮김

      663년    2월 백제부흥군 신라의 공격으로 거점 다시

                   주류성으로 옮김.

                3월 왜, 백제 구원군 파견

                5월 왜장 고구려에 알리고 충장에게 돌아옴

                6월  당 손인사 웅진에 도착

                      풍장, 복신 살해,  왜군 신라의 2성 취함.

                8월 백촌강 싸움 발발,  나당연합군  주류성 공략 개시,

                     풍장 고구려 도주

                9월  주류성 함락

                10월 신라, 마지막 부흥 운동 세력인 임존성 공격

                11월  신라, 임존성에서 퇴각

                       당군, 임존성 함락시킴>

 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백제부흥 전쟁이 역사적 기록으로 서기 663년 11월 임존성 함락으로 종결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신유보 마씨대종보의 중시조로 기록되어 있는 마육침공의 조종(祖宗)께서 그 후 183년 동안 백제부흥전을 전개했다는 가설은 더욱 가관이다. 왜냐하면 백제부흥전을 조종께서 전개하여 그의 세력이 충천에 달하였을 때가 서기 846년이라 적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여기서 마육침공의 조종은 누구이고 백제부흥장이라는 마육침공은 어떻게 백제부흥장군이 될 수가 있는가? 서기 846년에도 백제부흥전쟁이 역사적 기록으로 있는가하는 문제인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없다. 그때는 통일신라시대로 통일신라가 융성하고 번성할 때 마육침공께서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했다는 것은 역사를 아는 모든 분들은 웃을 일이 아닌 조롱꺼리가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비약을 넘어 날조를 하였다는 증거를 가지고 우리 장흥마씨의 중시조로 감이 어떻게 삼을 수가 있는가? 이 문제는 더 이상 거론 할 가치조차도 없는 명백한 허위이고 날조이므로 재론할 여지도 없다 하겠다.





3.정통족보의 기록은 역사적으로 상관관계가 맞는가?하는 질문에    대하여



  정통족보 무진보, 경술보, 임술보, 계묘보, 병자보는 줄곧 장흥마씨의 시조는 은나라 양성군자이신 마완(馬浣), 동래조는 기자를 따라와 기자조선을 건국하는데 공을 세운 마장(馬莊), 백제건국 십훈인 좌보 마려(馬黎)님을 관조(貫祖)로 모시고, 고려 선종 때 판개성윤인 마혁인(馬爀仁)님을 중시조(일세조)로  모신다. 이는 고조선이 망한 후 부여,옥저, 예맥 등을 거쳐  고구려, 신라가 건국한 후 온조가 고구려(부여) 유민을 이끌고 남하하여 백제를 기원전 17년에 건국할 때 마려 선조께서 공을 세워 마사량현을 수봉하여 관조가 되시고, 마한을 정복하여 강성한 국가가 되었다는 기록과도 이어지며, 그 뒤 천년 후 고려 선종 때 판개성윤 마혁인님이 중시조로서 연결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무리가 전혀 없다. 마씨대종보는 역사적 사실을 억지로 꿰 맞추다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가설로 우리 장흥마씨를 혹세무민하고 복고대종을 가장하여 목천을 대종으로 만드는 우를 범한 것이다. 정통족보 무진보에 보면 목천계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비록 폐보이긴 해도 정해보에도 목천계에 대한 기록이 註 (주)로 표기되어 나온다. 사실관계 여부는 목천과의 복고를 위해 지난하게 토론하고 연구하여 결론을 도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마씨대종보를 근거로 목천마씨의 상계를 주장하는 것은 이상과 같은 이유로 근거가 없다 하겠다.



4, 결   론

   따라서 정통인 우리 장흥마씨의 기록은 역사적으로나 사실로서도 정확하게 맞는 주장이므로 정통족보의 정통성과 우리 장흥마씨의 정체성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다함께 노력해야 하며, 목천과의 관계 재정립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011년  1월 3일 신묘년 새해에

                                     

                                              小石  馬  在  德  伏拜


 




이름아이콘 장흥마
2011-01-26 17:45
회원사진
감사합니다.우리 장흥마씨 신유보 "마씨대종보" 에 잘못된점이 있다면,전문지식을 소유하신 종친님들은 역사적인 사료와, 근거될 문헌을 발췌하시고 ....등등등 하셔서 신사적이고 학술적인 토론 하심을 바라옵고.....
그리하여 우리 장흥마씨 후손 들에게 바르게 알려주심을 바랍니다. 화이팅 !
   
이름아이콘 마장현
2011-02-20 04:52
많은 논란은 좋게본다  그러나 엉터리 가설, 허구성 등의 표현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이조때는 양반계급의 증명이 족보라,  많은 내력이 없다. 단순하다
이후 족보를 작성하는 선조도 많은 자료가 없다, 잘해볼려고 나름대로 족보를 작성하였다,
누가 족보를 만들어도 잘못된점이 있다

그 후 인터넷 발달로 다른 자료가 나왔다. 또다른 족보 정리가 정정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 후는 우리들의 몪이다,

종친 중앙회에서 왈가 왈부 하면 지역 종친들은 누가 바로 세우겠는가 중심을 잡고
인터넷상은 정보만 받을 뿐이지 친족끼리 비방은 자제를 바랍니다.
   
이름아이콘 마장현
2011-02-24 01:05
한국성씨족보 2010년 1월 10일 발행시 무엇했는가
   
이름아이콘 小石馬在德
2011-03-05 21:56
《Re》마장현 님 ,
백암 할아버지! 한국성씨족보를 보지를 못했습니다. 내용을 확인 후 정리하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성씨족보가 성균관에서 발간되었습니까? 국금합니다.
   
이름아이콘 小石馬在德
2011-05-29 04:01
《Re》마장현 님 ,
백암 할아버지!신유보의 상계는 명백히 역사적 근거가 없는 허구와 날조인데 이를 발간한 개인은 잘못에 대해 말한 적이 없고 우리 장흥마씨들은 신유보에 따르면 상계는 이런 주장이 맞고, 무진보에 따르면 이런 주장이 맞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선조들이 족보를 잘못 만들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 잘못이 장흥마씨들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면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앙종회는 지금껏 신유보의 상계를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정통족보인 무진보,경자보 임술보 계묘보,정유보만 정통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지파에서 잘못된 상계를 가지고 계대를 잡았다면 정통족보의 내용대로 정정하면 될 것입니다. 선조가 한 일이니 잘못된 것은 덮자고 하는 것에는 저도 전적으로 동의를 합니다.하지만 현재 인터넷에 신유보를 근거로 우리 장흥마씨의 상계를 기록 전파는 하는 경우가 타성씨는 몰라서 한다고 이해해도, 우리 장흥마씨 일부가 이 엉터리 주장을 더욱 그럴듯하게 각색 윤색해서 "장흥마씨"라는 제목을 달고 블로거나 카페등에서 올리고 있으니 안타까워서 이런 글을 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정통성과 정체성은 함부로 훼손하지 않은 것이 후손의 도리라 생각해서 글을 올리다보니 읽기에 너무 과한 표현이 있었다면 표현의 문제는 심심한 이해를 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마재덕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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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장흥마씨 큰별 마경석 참판공파회장님 별세 [3] 小石馬在德 2011-02-28 2876
61 부산 검정산을 다녀오면서 [8] 白岩 2011-02-20 2275
60 국민훈장 석류장 수여 (조은공파 31세손 마삼섭) [5] 마삼섭 2011-02-12 2955
59 신유보 마씨대종보의 역사적 허구에 대하여 [5] 小石馬在德 2011-01-26 2589
58 일반 신묘년 새해를 맞이하여 님의 건강과 행복하심을 기원합니다. [2] 장흥마 2011-01-23 2096
57 새해 인사 드립니다 [2] 春 園 馬 相 文 2011-01-05 1590
56 새해아침 [2] 梅岸馬点弼 2011-01-02 1920
55 우화의 강 [3] 白岩 2010-12-14 1822
54 요청 축하해주세요/대학 수시합격 [2] 평강섬김이 2010-11-20 2683
53 시향 [2] 梅岸馬点弼 2010-11-16 3123
52 11월26일15시 마평수 회장 국립창원대학교 명예경영대학박사 학위.. [2] 권진실 2010-11-08 1929
51 건강하지 않으면 천하 야먕도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삼천마 2010-09-1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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