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작성자 白岩
작성일 2020-01-19 (일)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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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12.xxx.31
馬挺立(지리산권문화연구원 남도문화연구소)

마정립 (馬挺立) : 1590~1636



장군은 병자 호란때의 충신이다. 장군의 선대는 조선의 개국후 대장군이 되었고, 1401년(태종1년) 동지총제가 되었으며, 장흥부원군에 피봉되었다. 그 후 높은 벼슬을 지내오던 가문의 후예로 마 정립에 이르렀는데, 장군의 호는 한남(漢南)이고, 병자호란에서 순직하였다.

공은 태어날 때부터 자색이 남다르며, 학문에 능하고 무예에 뛰어나, 인근 각지에서 우러러 보는 인물로 성장했다. 1634년 단양군수로 있을 때, 갈파진 첨사를 임명 받아 그 곳의 방어를 강화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변방에 적들의 침입이 빈번하여 이를 대비키 위해 전천후 훈련을 시킨 병사를 양성하여 적의 침입에 철저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1636년 청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우리나라에 침입한 병자호란이 발생되었다. 이 때 장군이 지키던 곳을 침입해 온 청병과 대치하여 견적을 벌였으나, 숫적으로 열세에 몰린 장군은 용감히 싸우는 병사를 지켜보면서, 최후의 일각까지 병사를 격려하며 성을 사수키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장군으로서도 어찌할 도리 없이 성과 함께 최후를 마치기로 하고 한 토막의 글을 남겼다.

“호병이 입경하니, 충의가 철천이라, 사직이 위태하여 가문을 보전하기 어렵다. 글을 쓰려니 통곡이 앞서며 일월이 무광하다. 소신은 무기하고 아아, 소자 원효의 수학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고.”

장군은 전세의 승산이 없지만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으니, 그때가 1636년 12월 16일로서 나이 47세였다.

그 후 200년이 지나 조정에서 정문을 내렸으니 1832년(순조32년)의 일이다. 함양읍 신관리 기동 마을 앞에 장군의 정려가 있고, 비문은 관찰사 이헌영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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