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라감사호령접계축성장계(付全羅監司湖嶺接界築城狀啓)
부전라감사호령접계축성장계(付全羅監司湖嶺接界築城狀啓) (전라도 감사에게 호남과 영남의 경계에 성을 쌓도록 글로 아뢰어 부친다) 마지원(馬志遠)
頭缺云云 一 本道與慶尙道接界而嶺南往來之路一曰蟾津二曰八良峙也蟾津源出智異山到求禮來江到本道光陽慶尙道河東兩邑之界而爲蟾津又有三十餘里而入于海沿流而有大路自河東有求禮而達于南原是白遣八良峙卽一大嶺而在本道雲峰慶尙道咸陽兩邑之界 太祖大王大捷倭寇之地也壬辰丁酉之亂倭賊一枝由順天下陸一枝自河東合于蟾津陷求禮又一枝由八良峙來會合勢陷南原此其前事之已驗者則蟾津八良峙尙無防守之備者其在綢繆之策實涉踈虞是白置左水臣蔡以章爲當設水軍邊將於蟾津是如爲白乎矣臣頃嘗往審則蟾津距海門三十里而其間淺灘難運大船是白遣且自統營設置別將千餘民戶皆作櫓軍凡百需用之物皆由此出是如爲白置今若盡奪募軍作爲能櫓軍則統營之不成貌樣亦涉可慮臣伏見此地居民皆以漁採爲業處於兩道水陸之交啇賈輻輳故其民無不富饒豪悍臣意則統營募軍別將自營有履歷武弁入啓差定之後募軍皆令作隊鍊習技藝明行賞罰其持船隻亦皆自營作案如已朽破則許給禁山木修改設有軍變賊由陸則與河東縣監可以合力拒守於求禮之境由海則以船隻可以出海接戰盖漁船比之戰船體樣雖小或載運糧餉器械或往來接應臨戰緊用無過於此是白遣河東縣稍進位號措置軍務此則慶尙監司統制使自可詳審其便宜是白乎旀八良峙則移設南原營將於雲峰使之拱扼關防則必能臨亂得力是白乎置盖雲峰一縣卽山上開野之地也其地勢恰與復興相似有築城之議而周回比復興尤爲濶大此則似難輕議 一 本道沿海諸邑距京城之大路由羅州長城踰蘆嶺歷全州到礪山入于湖西之界是白置以都會處言之則羅州全州也以險隘處言之則蘆嶺也以咽喉要害處言之則礪山也羅州旣設營將以鎭之蘆嶺則有笠巖山城以搤之全州有威鳳山城以壓三禮大路獨礪山無備誠爲踈虞盖設有事變賊若由左道峽路則山高谷深道路險阻若由右道龍安咸悅等邑直渡林川韓山等地則中有大江津路甚險船隻且小其勢捨礪山則更無他路真是咽喉要害之地也故臣李東稷爲本道監司時請築於礪山邑後而 朝廷不許誠爲可惜也礪山邑東五里之許有天臺山者四面斗絶其中平坦水泉周足周回三十里許西望大海東接峽路南俯全州北臨湖西四方若三十里無不歷歷於眼底云臣雖未及往審而臣之幕裨及親舊之見者皆言其天作之險且聞道內公議咸一辭曰此地可以築城云 朝廷如以爲可則臣當馳進詳察是白在果未及親審之前輕先啓聞極爲率爾是白乎矣無時出入看審城址則人心易致驚駭是白乎等以不得已所聞附陳而形勢之要衝言之則當爲第一是白齊 一 道內海路要害諸處因以設鎭防戍其餘諸島亦方有設鎭之議則別無可論是白乎矣第以要害中最緊者言之無過於古羣山一鎭是白置臣於春間巡歷時由羣山越海百餘里入往古羣山詳察形勢則自靈光七山海洋歷數百里無一島嶼獨古羣山蝟島兩島雙峙於大洋中而蝟島船路稍左泊岸亦不便古羣山則山勢回抱可以藏船候風故京江往來船隻未有不由此島而能得無事船者盖重山環繞於四方而其中廣濶作一大湖可用戰船數百艘真是天作之地也臣意則古羣山僉使必以閫師儲望之人極擇差出以盡防守要害之策似宜是乎矣格浦段處於西海大洋邊與古羣山相對於數十里之間互爲猗角之勢而當初設爲檢營創造官闕者專爲江都捍衛之地盖其形勢水陸要衝不但捍衛江都而設置規模累度變易尙無一定之式誠爲慨然是白置先臣爲本道監司時創設格浦戰船以臨急時監司坐船而法聖以上各鎭戰船監司親自習操於格浦後洋是白如可乙亥年分因巡撫使書啓諸鎭戰船使之專屬於水營而格浦船段繫是監司坐船不可屬之於水營是乎旀以今至十年之間閒繫浦口改槊改造一依年限而元無出運之時旗幟器械隨毁隨改而元無試用之事能櫓軍射炮手隨闕充定而元無鍊習之日撿營許多物力費盡於無用一船臣實未曉是白置本浦當初所屬諸鎭之距水營以陸計之則皆爲五六日程則水路候風往來之際必須費了一旬設有事變有難及期應援是白遣水營號令亦必難通者數日之內當初屬之檢營意盖有在臣意格浦別將例兼檢營中軍則不可以冗散之類差遣必以閫師之人極擇差出古羣山僉使以下使之皆屬於格浦依前每年監司親往習操於格浦後洋監司有故則令別將代行大將事恐似合宜是白旀檢營軍餉 朝家連因凶歉移替取用之故卽今所儲極爲零星一年耗米不足以支用於應下之朔料其在待變之道極爲寒心道內各邑所儲賑廳米加數判給俾無苟艱之患爲白乎旀軍制之累次變改爲不可則格浦戰船區處之策亦宜啇量指揮是白齊 一 赤裳山城段臣曾爲史官時以實錄曝晒事留住累日是白遣上年秋巡時亦爲往審是白在果此城處於窮山深峽中地勢之險阻高峻雖古人所謂蜀道之難於上天者無以過此西北兩門僅通人路而牛馬不得通故粮餉無以運入城下十里許稍平處設置西北兩倉而臣詢諸居僧則以爲僧從中少年力强者僅負三年米上山云設有事變則一人負三年米其何以一時運入耶無食之軍決難守城是白乎旀此山東接嶺南北接湖西故謂以三道交會而人皆訒爲要衝之地是白乎矣嶺南地界有一線小路名曰金烏嶺而絶險難通且此城四方數十里之內無非高山峻嶺重巒疊嶂無一開野之處賊若以大軍犯之則無屯駐之所欲以孤軍頓之則深入絶險之地必無善戰之策賊雖無謀萬無此理是白遣雖以壬辰丁酉事言之賊或由蟾津路或由八嶺路來陷南原又一枝由秋風嶺由黃澗永同入錦山義兵殲焉錦山在於此城西百里之外而峽中開野處也其時終無被兵之事只虞往來剽掠於茂朱境此已審明驗是白遣城之四圍皆赤石削立數仞飛鳥難越雖使嬰兒登高投石賊必不致仰窺若欲爲本土人民避亂之所則旣有天作石城加築近於疊床若欲爲保障重地則城中峽隘大軍難於駐箚是白乎旀先臣爲本道監司時狀啓有曰此城自高麗至我 朝累經兵亂而未嘗一被其鋒若以藏史爲重則何必設倉庫備器械置軍兵以爲招盜速寇之資哉臣意實錄璿源錄所藏之處必以遠害絶患萬全無危爲主如軍兵粮餉之備一切革罷而但令叅奉率其流卒輩僧徒謹爲守護一如太白五臺之例則更無他憂最爲得宜若曰此城固在於湖嶺之間不可無備者則陞茂朱爲府使以錦山之安城沃川之陽山面割而屬俾作設鎭擧一邑民丁編之城築而他邑束伍不爲分隷則勢專而不分備豫而不窘是如爲白乎則廟堂又令啇處便否啓聞是白乎等以其後狀啓又曰此城旣置軍兵又儲粮器則賊必窺覬不能捨去萬一防守失宜未免兵鋒侵犯則實錄璿牒其將奈何臣之於狀所謂革罷軍兵謹爲守爲護一如太白五臺之例者遠害絶患萬全無危之意也 朝廷以旣設還破爲難則依定奪只屬三邑軍兵者猶勝於前抑爲其次是如爲乎則 廟堂以爲一朝還罷亦涉重難是如三邑軍兵專屬本城之意覆啓蒙 久其後茂朱之陞府使安城之害屬茂朱卒如先臣之言是白乎矣乃若先臣本意則盖欲革罷守禦之備以爲謹護實錄璿牒之地是白如乎又其後柳命賢爲本道監司一依先臣之言啓聞請罷 朝廷從之而到今必欲更作保障之地修城堞儲粮器置屬邑則亦須十分啇度熟講恐不可率易處置是白乎旀至於錦山珎山龍潭長水等邑移屬此城事詢問民情混一以爲便好是白置盖此城革罷之後此等邑軍兵移屬於礪山後營相距皆至二三日程而今及使之捨遠取近又無糶糴轉輸之勞則民情之樂從不問可知是白在果第念礪山卽咽喉要害之地則終不能置重兵設大陳今乃奪此與彼則在軍卒雖幸在 朝廷備豫之責未知得失何如是白乎乙喩臣意則使本府使全管此城城門及城內防提啇加修築有急則府使率本府兵入守謹護實錄璿牒則似可以萬全無憂是白乎等以致此實陳愚見是白齊 一 今臣所陳諸條俱繫大段興作 廟堂於從違之際必難容易裁斷是在果其中赤裳山城修築之事旣有 成命則役事停否必須趂卽指揮然後可無臨時狼狽之患 廟堂從速稟旨分付爲白齊
머리말이 빠져 생략한다. 1. 하나, 본도는 경상도와 더불어 접경지대로 영남을 오고 가는 길인데, 첫째로 말하자면 “섬진강”이고, 두 번째로 말하자면 “팔량치”입니다. 섬진강의 근원은 지리산에서 나와서 구례에 이르러 강이 흘러서 본도에 이르면 광양과 경상도 하동 양쪽 고을의 경계에서 섬진강이 되고 또 삼십여 리를 물이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고 있는데, 큰 도로가 있어 하동으로부터 구례가 있으며 남원으로 통하는 것이옵고, 팔량치는 즉 하나의 큰 고개로 본도의 운봉과 경상도 함양에 있는데 양쪽 고을의 경계는 이성계(李成桂) 태조대왕께서 왜구와 싸워 크게 무찌른 땅입니다. 임진(1592)년 정유(1597)년의 난으로 왜적의 한 가지 길로 순천 아래의 외길로 육상하여 침입함으로 말미암아 하동으로부터 섬진강으로 모여 구례가 함락당했고, 또 한 가지 길로 말미암아 팔량치로 와서 세력이 모여 합해서 남원이 점령당한 이것은 그 이전의 일일 뿐, 증험한 것은 섬진강과 팔량치를 오히려 막고 지켜야 할 준비가 없었던 것은 그 빈틈없이 방어하는 대책이 있었으나 실지로 허술하게 지나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좌수사 신 채이장(蔡以章)은 마땅히 섬진강에 수군 변장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라 하옵시고, 신이 잠시 일찍이 가서 살펴보니 섬진강에서 해문의 거리가 30리 떨어져 있고, 그 사이가 얕은 여울이라 큰 배가 운항하기는 어려울 것이옵고, 또 삼도수군통제영으로부터 별장을 설치하여 천여 민가 집을 모두 다 노를 젓는 군사로 만들고 무릇 온갖 필요한 물건을 써야 하며 모두 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라 하옵니다. 지금 만약 모두 징집하여 모집한 군사들로 능히 노를 젓는 군사로 만들어야 한다면 삼도수군통제영의 모양을 이룰 수 없고 또한 우려스럽습니다. 신이 삼가 보건대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은 모두 다 고기 잡는 어부로서 양도에서 가업으로 사는 곳이 되어 물과 땅이 교차하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곳이기 때문에 그 백성들은 풍요롭고 사나워 거칠지 않음이 없으므로 신의 뜻으로는 곧 통영에서 군사를 모집하고 별장은 진영으로부터 이력이 있는 무관이 임금에게 아뢰어 업무를 맡긴 후에 군사를 모집하여 모두 이를테면 대오를 만들어서 기술과 재주를 연습하고 상벌을 분명하게 행하여 그 선척을 지키고 또한 모든 진영으로부터 문안을 작성하여 이미 배가 썩고 파손될 것 같으면 금지했던 산의 나무로 고쳐 수리하도록 바꿔 설치하여 제 때에 공급하고자 하는 요구를 허락해야 하고 육지로 말미암아 적이 변하여 움직이는 군사가 있으면 더불어 하동 현감과 힘을 합할 수 있음으로써 바다로 말미암아 구례의 경계에서 막고 지키면 선척으로써 가히 바다에 나와서 맞붙어 싸울 수 있습니다. 대개 고기 잡는 배는 전쟁하는 배와 비유하면 몸체의 모양이 비록 작아서 혹 군량과 무기와 병기를 실어 운반하고 혹 왕래하면서 상황에 맞추어 전쟁에 임하여 싸워 긴요하게 사용되어 이보다 더한 것은 없는 것이옵고, 하동현은 점점 나아가 지위와 이름으로 군사 업무를 조치합니다. 이렇게 하면 경상감사, 통제사는 저절로 자세히 살피게 되어 마땅히 편리하게 되시오며, 팔량치는 남원으로 옮겨 설치하고 운봉에 영장은 요새를 방어하는 것으로 하여금 국경을 지켜 보호하면 반드시 능히 난에 임하여 힘을 얻을 것이라 하옵시고, 아마도 운봉 한 현은 곧 산 위에 편평한 땅이 펼쳐져 있습니다. 지세가 때마침 다시 일어나 서로 성을 쌓는 논의가 있을 것 같으면 주위를 빙 돌아 비유하자면 다시 일어나 더욱 넓고 크게 된 이것은 곧 경솔히 의논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1. 하나, 본도의 바닷가 여러 고을은 서울의 큰길과 거리가 떨어져 나주, 장성으로 말미암아 갈재 고개를 넘어 전주를 지나서 여산에 이르러서 호서의 경계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사는 곳으로써 그곳을 말하자면 “나주, 전주입니다.” 가파르고 험한 지역으로서 그것을 말하자면 “노령입니다.” 목구멍과 같은 요충지로써 그곳을 말하자면 “여산입니다.” 나주는 이미 영장을 설치했고 진영을 노령에다 설치함으로써 곧 입암산성이 있으며, 막고 지키는 것은 전주로써 위봉산성이 있으므로 삼례의 큰 도로가 좁아짐으로써 외로운 여산은 방비가 없어 진실로 허술하게 되고 대략 설치를 해서 적이 변화여 움직이는 일이 있으면 만약 좌측 도로로 말미암아 길이 협소하며,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 도로가 험난합니다. 만약 우측 도로로 말미암아 용안, 함열 등 고을은 곧바로 임천, 한산 등 땅으로 건너려면 중간에 큰 강의 나룻 길에 매우 험한 선척이 있고 또한 그 형세가 작아 여산을 포기한다면 다시 다른 길이 없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목구멍 같은 요충지로 급소의 땅입니다. 작고한 신 이동직(李東稷)이 본도의 감사가 되었을 때 여산읍 뒤에 성을 쌓고자 요청하였는데, 조정에서 허락하지 않아 진실로 애석하게 되었습니다. 여산고을 동쪽 5리를 나아가면 천대산이라는 곳은 사방이 높은 벼랑의 절벽으로 끊어져 있고 그 안이 평탄하여 물과 샘이 두루 풍족하며, 둘레를 돌아 30리를 나아가면 서쪽으로 큰 바다가 바라다보이고 동쪽으로 좁은 길을 접하게 되며, 남쪽으로 구부리면 전주이고 북쪽으로 내려다보면 호서이며, 사방이 약 30리 눈 밑바닥에 다다라 이르자면 또렷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신은 비록 미쳐 가서 살피지 못하였지만 신의 보좌관인 비장의 오랜 친구로 보이는 자에 이르러 모두 다 그 자연으로 이루어진 험준함을 말하며 또 도내의 공의를 듣고 한결같은 말로 말하기를 “이 땅은 성을 쌓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정에서 만약 괜찮다고 여긴다면 신이 마땅히 달려 나아가 자세히 살펴 보옵거니와 아직 친히 심사하기 전이라 이르지 못하여 먼저 경솔하게 지극한 것을 듣고 임금에게 알리니 그를 기준으로 삼았사오되, 무시로 출입하여 옛 성터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의 마음을 몹시 놀라기 쉽기 때문이라 하시므로 어쩔 수 없는 바로써 덧붙여 진달하는 것을 듣고 형세의 요충지 그곳을 말하자면 마땅히 제일이 됩니다.
1. 하나, 도내의 바닷길 요충지 여러 곳으로 인하여 군대 진영을 설치하여 나라 국경을 지키기 때문에 그 남은 여러 도는 또한 함께 두루 진을 설치하는 논의가 있으면 별도로 논할 것이 없으되 다만 요충지 중으로써 가장 긴용한 곳 그곳을 말하자면 “고군산의 한 진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사옵니다.” 신이 봄 사이에 곳곳을 순회할 때 군산으로 말미암아 바다를 건너 백여리 들어감으로 고군산 형세를 상세히 살피면 영광 칠산으로부터 넓고 큰 바다의 수백 리를 지나 크고 작은 섬들을 하나도 없이 외로운 고군산과 위도 양도가 큰 바다 가운데에 나란히 우뚝 솟아 있으며, 위도 뱃길의 약간 왼쪽 기슭에 배를 대고 또한 고군산은 불편하며 산세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배를 정박하고 떠날 때 순풍을 기다릴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서울 한강으로 왕래하는 선척은 이 도를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능히 배가 무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사방에 둘러 에워싸여 몇 겹으로 둘러 쌓인 산이고 그 가운데가 넓고 광활한 하나의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져 가히 전투 배 수백 척을 사용할 수 있어 참으로 이곳은 하늘이 만들어준 요새지입니다. 신의 뜻은 고군산에 첨절제사를 반드시 곤수로써 명망이 쌓인 사람을 임명하여 엄중히 가려서 차출하여 모두 다 막고 지킴으로써 요충지의 계책을 쓰는 것이 마땅할 것 같사오되, 격포 단위는 서해 큰 바닷가에 머무르는 곳과 더불어 고군산 수십 리의 사이에서 서로 상대해야 하고 서로 뾰쪽뾰쪽한 방어용 기각의 형세가 되어야 하며, 당초에 설치를 검영이 해야 합니다. 처음 대궐의 관아에서 만드는 것은 오로지 강화도를 수호하는 지역을 위하고 대개 그 형세는 바다와 육지의 요충지로 할 뿐만 아니라 강화도를 수호하고 설치하는 규모를 여러 번 변화하여 바꾸어야 하는데, 오히려 일정한 법식이 없어 진실로 비분강개하옵니다. 신이 먼저 본도를 감사할 때 처음으로 격포에 전투 배를 설치하고 급할 때에만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배를 타고서 법성포 이상 각 진의 전투 배에 감사가 친히 스스로 격포 뒤 바다에서 훈련을 하옵다가, 을해(1695)년 분 순무사가 임금에 알리는 글에 의하면 모든 진영으로 전투 배가 오로지 수영에 귀속함으로 하여금 격포의 선단을 묶어서 이것을 감사가 배를 타고 수영에 속한 것은 할 수 없으며 지금으로 10년간으로써 한가하게 포구 어귀에 매어두고 한결같이 정해진 햇수에 따라 배를 수리하고 배를 고쳐 만드는데, 원래 운행하러 나갈 때가 없습니다. 깃발과 무기가 훼손되는 대로 제때에 고쳐서 본래의 시험으로 사용하는 일이 없습니다. 능히 노를 젓는 군사와 포를 쏘는 포수는 결원이 생기면 보충하여 채우는데, 원래 연습하는 날이 없습니다. 검영은 허다한 많고 많은 물자비용을 쓸모가 없는 배 하나에 다 사용하니 신은 진실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본 포에 맨 처음 소속된바 여러 진영의 거리가 수영으로부터 떨어져 육지에서 그것을 계산하면 모두 해야 할 일이 5, 6일 정도 됩니다. 바닷길의 순풍을 기다려 오고 갈 즈음에 반드시 모름지기 열흘에 모두 다 써버립니다. 설령 일의 변고가 있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일에 격려하고 응원함에 이르옵고, 수영의 명령이 또한 반드시 며칠 안으로 통하기가 어려운 것은 맨 처음 검영에 속한 뜻이지 어찌 신의 뜻이 있겠습니까? 격포 별장은 의례히 검영의 중군을 겸임하고 한가한 종류의 임무를 맡김으로 보내는 데는 안 됩니다. 반드시 곤수의 사람으로서 엄중히 가려 차출하여 고군산 첨절제사 이하 그것으로 하여금 모두 격포에 속하고 전례대로 매년 감사가 직접 가서 격포 뒤 바다에서 연습과 훈련하고 감사의 유고가 있으면 별장으로 하여금 대장으로 대신 행하면 두려운 일이 합당할 듯하오며 검영의 군대 식량은 조정에서는 잇달아 흉년이 심하여 서로 옮겨 가져와 그것을 사용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저장된 것이 지극히 보잘것없는 일 년이 되어 추가로 거둔 쌀이 부족하여 응당히 할 급료에만 지출하여 사용함으로써 그 변란의 도리를 대비하고 있는 것인데, 지극히 한심한 도내입니다. 각 고을에서 구제하는 진휼청의 쌀을 저장한바 수량을 더 늘려 더 보태주어야 진실로 어려운 재앙이 없게 될 것이오며, 군의 제도를 여러 번 바꾸거나 고치기를 할 수 없다 하면 격포의 전투 배를 이리저리 변통하여 처리하는 계책을 또한 마땅히 헤아려 지휘해야 합니다.
1. 하나, 적산산성 구간을 신은 일찍이 사관이 되었을 때 실록을 바람에 쐬고 볕에 말리는 일로써 머물러 살아왔던지가 여러 날이옵고, 지난해 가을 순행할 때 또한 가서 살펴보게 되었거니와 이 성이 궁벽한 산 깊은 산골짜기 안에 쌓았던 곳으로 땅의 지세가 험하고 높고 험준하여 비록 옛사람들이 이른바 “촉나라 길은 하늘에서도 험난하다.”고 일컫는 것은 이 서쪽과 북쪽의 양쪽 문을 지나칠 수가 없었으므로 간신히 사람은 길을 통과 하는데, 소와 말은 통과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군대 식량을 성 아래 십 리까지 들어와서 운반할 수 없으므로 약간 평평한 곳의 서쪽과 북쪽에 양쪽 창고를 설치하도록 허락하여 신이 여러 승려에게 물으면 “승려를 따르는 소년들 가운데 힘이 강한 자들로 삼아 간신히 삼 년 쌀을 지고 산에 올라간다고 일컬어,” 설령 일의 변고가 있더라도 한 사람이 삼 년 쌀을 지고 어찌 한꺼번에 운반해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먹지 않은 군사는 결코 성을 지키기가 어렵사오며 이 산 동쪽은 영남이 접하고, 북쪽은 호서가 접하기 때문에 일컬어 3개의 도가 서로 만나 교차함으로써 사람들이 모두 다 과묵하여 요충의 땅이 되오되, 영남 땅 경계에 유일한 작은 길이 있는데, 이름을 말하자면 “금오령인데,” 절벽으로 험준하여 통행하기 어렵고 또 이 성의 사방 수십 리 안에 산이 높고 험준한 고개와 높고 험한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서 있지 않음이 없고 하나도 넓은 들판이 펼쳐진 곳이 없습니다. 적이 만약에 대군으로써 그곳을 범한다면 그곳에 주둔한 바가 없이 고립된 군대로써 그곳에서 패하기를 바라면서 깊은 절벽의 험준한 지역으로 들어가 반드시 좋은 전쟁의 계책이 없으므로 적은 비록 절대로 이러한 이치로 앞뒤를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꾀하지 아니하옵고, 비록 임진(1592)년 정유(1597)년 일어난 사건으로써 그것을 말하여 적은 혹 섬진강 길로 말미암고 혹은 팔령길로부터 들어와서 남원이 함락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추풍령으로 말미암아 황간 영동으로부터 들어와 금산의 의병들이 섬멸하였으니, 금산은 이 성의 서쪽 백 리 밖에 있으면서 깊은 산골짜기에 넓은 들판이 펼쳐진 곳입니다. 그때 마침 전쟁에서 침략당하는 일이 없어 다만 오고 가는 염려가 무주의 경계에서 빼앗겨 이와 같이 명백한 증거를 살필 뿐이옵고, 성이 사방으로 포위되어 모두 붉은 돌로 깎아지른 듯 수길 높이 우뚝 솟아 새도 날아서 넘기가 어려운데, 비록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높은 곳에 올라 돌을 던지면 적은 반드시 올려다보고 성에 오르지 못합니다. 만약 본토 백성들이 어지러운바 피란하고자 한다면 이미 가파르게 천연적인 돌로 만들어진 성이 있는데, 더 가까이 겹겹으로 마루에 성을 쌓아 만약 지키고 막아야 할 중요한 땅으로 하고자 하다면 성안에 협곡이 좁아 큰 군대가 외국에서 머무르기에 어렵사오며 신이 먼저 본도에 감사할 때 임금에게 장계를 올려서 아뢰어 말하기를 “이곳 성은 고려시대부터 우리 조선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전쟁의 난을 겪으면서 일찍이 한 번도 그 날카로운 예봉을 입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역사를 간직함으로써 중요하다면서 하필이면 창고만을 설치하여 병기와 무기를 갖추고 군사를 배치함은 도적과 외적을 속히 불러들이는 바탕으로 삼기 때문입니까? 신의 뜻은 실록을 기록한 왕실 족보를 보관한 곳은 반드시 우환을 끊고 피해를 멀리함으로써 아주 완전하여 위험이 없이 주로 군사들과 같이하여 군 식량과 급료를 갖추어 모든 일체를 없애고 다만 참봉으로 하여금 솔선수범하여 그 떠돌아다니는 무리와 승려들을 삼가 한결같이 태백산과 오대산의 예로 보호하고 지키게 되면 곧 다시는 다름없고 가장 걱정되는 것을 마땅히 얻게 되어 만약 말하자면 “이 성은 아주 견고하여 호남과 영남의 사이에 있어서 갖추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무주를 승격시켜 부사로 하여 금산의 안정된 성으로서 옥천의 양산면을 부탁하여 쪼개서 한 고을을 들어서 진영을 설치하여 민간인을 징집하여 성을 쌓는데 편성하고 다른 다섯 고을을 하나로 묶어 나누어서 예속시킬 수 없다면 온전한 형세로 나누지 않고 미리 준비해서 대비하면 군색하지 않으리라 하옵신즉 묘당은 더욱이 명하여 알맞은 곳인지, 편한지 불편한지를 물어서 아뢰게 하시므로 그 후에 임금에게 장계를 올림으로써 또 말하기를 “이러한 성은 이미 군 병사들을 배치해 두었고 또 식량과 무기를 쌓아두면 적은 반드시 틈을 엿보기 때문에 능히 버리고 갈 수가 없습니다.” 만일 막고 지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아 날카로운 병사들의 침범을 면할 수가 없으면 실록을 기록한 왕실 족보를 장차 어찌 할 것인가? 신이 그곳을 장계에 이른바 군병을 혁파하여 없애고 삼가 하나같이 태백산 오대산의 예로 보호하고 지키는 것은 재해를 멀리하고 우환을 끊어 가장 안전하고 위험을 없애는 뜻입니다. 조정은 이미 설치한 것을 도리어 파괴하기는 어렵게 되기 때문에 결정한 대로 따르고 다만 세 고을 군병이 속한 것은 오히려 먼저 억눌림에 감당하는 것이 다음에 하는 것보다 낫다라 하온즉 묘당은 하루아침에 도로 없앴기 때문에 또한 대단히 중대하고 어려운 일에 관섭하여 이 세 고을 군사같이 온전히 본성에 전속시키기는 뜻은 깨우침을 덮어씌워 그 후 무주를 부사로 승격시킨 지 오래되어 안정된 성의 재해가 무주에 속하여 마침내 먼저 신의 말과 같사오되, 이에 만약 먼저 신의 근본 뜻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찌 방어로 지키는 준비를 없애버리고자 하십니까?” 삼가 실록을 기록한 왕실 족보의 땅을 보호하는 까닭이옵더니, 더욱이 그 후 유명현(柳命賢)이 본도의 감사가 되어 한결같이 따랐습니다. 먼저 신의 말을 임금에게 아뢰어 혁파한다는 요청을 듣고 조정에서 그것을 따르고 지금에 이르러 반드시 다시 종묘사직을 지킬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자 할 것입니다. 성첩을 중수하는데 양식과 무기를 마련하여 속한 고을에 두면서 또한 모름지기 충분히 알맞을 정도로 익숙한 두려움을 귀담아들어 쉽사리 처리해서는 불가하오며, 금산, 진산, 용담, 장수 등의 고을에 이르러 다른 곳에 옮기어 이속 하고 이 성의 일을 묻고 백성들의 실정을 물어서 하나로 섞는 것은 편리하고 좋기 때문이옵기도. 대개 이 성을 혁파하여 없어진 이후로 이러한 고을 등은 군사들을 여산으로 옮겨 이속 한 후 진영과 서로의 거리가 모두 걸리는 거리가 2, 3일 정도면 이르는데, 지금 그곳으로 하여금 먼 곳을 버리고 가까운 곳을 취하여 더욱이 쌀을 사고파는 환곡을 운반하는 노고가 없으면 민간 사정의 즐거움을 좇아 묻지 않고 알 수 있사옵거니와, 다만 생각건대 여산은 곧 목구멍과 같은 요충지로 마침내 두고 있을 수만은 없어 대군으로 병사를 늘려 큰 진영으로 설치하여 지금에 빼앗아 이쪽과 저쪽이 함께하여 군졸들이 있어서 비록 다행입니다. 조정에서 잘 갖추어져 있고 미리 책임을 져서 손해와 이익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하면 어찌 하올지 신의 뜻은 본 부사로 하여금 온전히 관리하도록 하여 이 성의 성문과 성안에 제방을 알맞게 더 고쳐 쌓아 경계하는 것이 급함이 있으면 부사가 본부 병사들을 통솔하고 들어가 지켜 삼가 실록을 기록한 왕실 족보를 보호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주 완전히 걱정이 없어 하시므로 이것에 이르러 실로 어리석은 견해를 진술합니다.
1. 하나, 지금 신이 여러 조목을 함께 묶어 대략 진술하는바 따르고 어기는 즈음에 묘당에서 떨치고 일어나 실행하지만 반드시 섣불리 결단하여 재가하기가 어렵거니와 그 가운데 적산산성은 고쳐 쌓는 일로 이미 명령을 내리면 큰 공사를 실행할지 그만 둘지의 여부를 반드시 치르도록 하여 곧 지휘하도록 한 연후에 가히 임시로 낭패당하는 걱정이 없게 하여야 하고 묘당에 속히 아뢰어 임금에게 받은 품지에 따라 명령을 내리게 하소서.
부전라감사호령접계축성장계(付全羅監司湖嶺接界築城狀啓) 마지원(馬志遠) 2023년 3월 21일 화요일 八世孫 硄德 永鉉 謹譯 (8세손 광덕 영현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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